[앵커]
한국전쟁 당시 사망했지만, 민간인 참전자라는 이유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요.
아버지의 죽음을 심의받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닌 사연,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.
[정금임 : 엄마가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.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….
(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본 적) 없지! 6.25 때 아버지가 뱃속에 넣어 놓고 가서 안 오셨으니까. 얼굴도 없고 사진도 없고.]
1951년 3월.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눈 비극적인 역사의 한복판에서도 생명은 꽃을 피웠나 봅니다.
이야기는 그로부터 한 달 전, 여기서 20km 떨어진 한 마을에서 시작합니다.
정 씨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평범한 농사꾼 한 명이 살았습니다.
어여쁜 부인과 다섯 살배기 딸, 그리고 한 달 뒤면 태어날 둘째를 기다리는 평범한 가장이었죠.
[정금임 : 언니가 5살이었는데 그때 우리 집사람이 태기 가졌다고 엄청 좋아했대요.]
그의 이름은 정문채, 마을에선 ‘기수’라고 불리던 그가,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.
행방불명된 것은 문채 씨만이 아니었습니다.
같은 마을의 다른 정 씨 2명도 함께 자취를 감춘 겁니다.
하나같이 이 마을에서 가장 덩치 좋은 농사꾼이었습니다.
[정판병 : 어휴 한창이지. 한 30살 됐으니까.]
[기자 : 힘이나 체격이 어떠셨어요?]
[정판병 : 힘이 좋죠.]
흉흉한 소문이 돌았지만, 마을 주민 가운데 이들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.
그로부터 한 달 뒤, 사라졌던 남자 중 두 명이 다시 마을로 나타나면서 정문채 씨의 소식을 알려왔습니다.
[정판병 : 정창주 씨(생존자)가 앉아서 노상하는 이야기가, 어느 날 세 명이 군인들의 짐을 짊어지고 생막골(생촌리)에 갔는데 한 분은 (총소리가 나서) 소리를 지르고, 자기는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와 버렸고, 그분은 그 길로 돌아가셨다고.]
공비 토벌 작전을 가던 군인들이 마을에서 제일 건장한 남자 3명을 짐꾼으로 차출해 옆 마을 장성으로 데려갔고,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 두 두 명은 도망쳤지만 문채 씨는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것.
[정병운 : 그 양반, 기수 씨는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지.]
이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문채 씨의 마지막이었습니다.
전쟁의 아픔을 기리며 올해도 떠들썩하게 치러진 호국보훈의 달 마지막 ... (중략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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